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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CCTV 열람 거부한 소장…법원 “업무처리 정당하다”

나강훈 2021-05-27 조회수 367

관련기사 제1216호 2021년 5월 5일자 게재 >

 

1. 사건의 경위

 

가. A는 본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고, B는 이 아파트 입주민이다. 이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B의 차량이 긁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B는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소장인 A에게 주차장 CCTV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A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임의로 주차장 CCTV를 보여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나. 이에 불만을 품은 B는 지속적으로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 및 입주민들에게 A의 업무처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관할 감독청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B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입주자대표회의 정례회의를 방청하면서 공개된 장소에서 A를 비난하고 ‘이런 X이 어디 있습니까, 귀때기 맞아도 한참 맞아야 되는 X인데’라고 욕설했다. 결국 B는 공공연하게 A를 모욕한 행위로 기소돼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다. 뿐만 아니라 위 아파트 위탁관리를 맡고 있는 D사에도 지속적으로 A의 교체를 요구했고, 결국 D사는 A에 대해 권고사직 처리를 하게 됐다.

 

라. 이에 A는 B가 자신을 모욕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데 대해 그 손해를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는 1심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는 취하하고 위자료 400만원만 청구를 유지했다. 1심 법원은 B는 A에게 30만원을 지급하라면서 B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으나 A는 위자료 금액이 적다며 항소했다. 

2. 법원의 판단 

 

가. 불법행위 성립

 

  A가 CCTV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한 것으로서 잘못된 업무처리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품은 B가 지속적으로 A를 비난하고 괴롭혔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욕설을 하는 등 A를 모욕했고, A가 본건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직을 그만두게 된 배경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관리회사에 관리사무소장 교체를 요구한 B의 행위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A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은 경험칙상 넉넉히 인정된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B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A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위자료 액수

 

  B가 저지른 불법행위의 경위, 정도, A의 연령, 피해 정도와 이후 일련의 정황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위자료 액수는 100만원이 적당하다. 따라서 B는 A에게 1심 판결 금액인 30만원에 70만원을 추가해 지급해야 한다.

 

3. 판례평석

 

이제 개인정보보호법을 모르는 관리사무소장은 드물 것이다. 이름, 연락처,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과 같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가 개인정보다.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역시 개인정보에 해당하니 주차장 CCTV도 엄연히 개인정보에 해당할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보호할지 정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법이 바로 개인정보보호법이다(동법 제1조 참조).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이용하고, 제공해야 할지 그 처리 방법과 절차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어떤 법적 제재를 받는지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개인정보처리자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그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며(동법 제17조 제1항 제1호) 이를 어기고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동법 제71조 제1호). 우리는 안타깝게도 개인정보를 함부로 수집하거나 위법하게 제3자에게 제공했다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게 된 사례를 드물지 않게 접한다.

그러니 A가 주차장 CCTV를 보여달라는 B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입각한 지극히 적법한 업무 처리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대가는 무엇인가?  A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귀때기를 맞아도 한참 맞아야 되는 X’이라고 모욕당했고, 결국 업체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해 일자리도 잃었다. B가 지속적으로 A를 괴롭히며 저지른 일련의 행위가 바로 갑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A를 모욕한 B는 겨우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는 유죄 판결 중 가장 약한 형벌이다. 범죄의 정상이 경미한 범인에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특정 사고 없이 유예기간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해주는 것이 선고유예다. 우리나라는 선고유예를 받은 날부터 2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해 준다. 그러니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가 무슨 뜻이겠는가? 결코 많다 할 수 없는 벌금 30만원조차 내지 않아도 되며 2년을 별 탈 없이 지나고 나면 면소된다는 것이다. 

민사적으로라도 A가 겪은 고통을 제대로 메워줄 수 있는 배상이 인정됐는가? 1심 30만원, 2심 100만원. A가 청구한 400만원으로도 그가 받은 고통은 제대로 위로받기 어려울 것이다. 적법한 업무처리를 하고도 속수무책 괴롭힘을 당하는 영원한 ‘을’에서 벗어나려면 갑질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하건, 손해배상을 현실화하건 제대로 된 제재가 반드시 필요하다.